주일/대축일 강론

대림 제4주일(다해)

dudol 0 2,030 2015.12.20 08:29

오늘은 대림 제4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와 계심을 알려주는 기쁨과 희망의 표시로, 대림환의 네 개의 초가 모두 환하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과 온 세상이 눈부시게 밝아지며, 어둠이 사라진 구원과 새 날의 기쁨을 오늘 다시 새롭게 체험하게 됩니다.

 

엘리사벳(히브리어로 하느님은 맹세하시는 분’ ‘주님께서 약속하셨다.’란 뜻, 주보 3면 참조)이 늙은 나이에 요한 세례자를 잉태한 사실(루카 1,26 참조)은 구약의 오랜 역사 속에서의 기다림을 상징합니다. 반면에 마리아의 잉태는 그 기다림이 실현됨을 상징합니다.

즈카르야(히브리어로 주님께서 기억하셨다.’는 뜻), 요한(그리스어로 요한네스, 히브리어로 여호하난은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는 뜻입니다.

위의 이름들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볼 때, 엘리사벳의 이름은 거룩한 하느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주고 있으며, 구세주 메시아를 보내 주실 하느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즈카르야의 이름은 그 약속들을 충실히 지키시는 하느님의 성실성을 상징하고 있음을 떠오르게 합니다. 사람의 이름은 예나 지금이나 자주 불릴수록 그 이름이 뜻하는 바를 성취하게 되고 그 이름이 뜻하는 바 예언적 성격을 지니기도 합니다. 우리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우리의 이름과 교회에서 세례 때에 받은 세례명에 대해 묵상하며 그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기로 결심해야 할 것입니다.

 

미카 5,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은 또한 위대한 두 인물인 아기 예수님과 아기 요한의 첫 번째 만남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모 찬가(마니피캇)를 부를 때 뱃속의 아기 예수님과 아기 요한이 서로 만나 기쁨에 차 뛰놀았을 것입니다. 뱃속의 아기들인 예수님과 요한이 서로 만나 태동한 것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인물과 신약의 첫 아담의 만남입니다.

엘리사벳의 인사에 답하여 마리아는 절세의 아름다운 송가를 노래합니다. “내 마음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성탄을 목전에 둔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를 일러준다. 첫 독서는 백성의 목자가 오시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라고 예고한다. 둘째 독서는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고 전한다. 주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살도록 평화가 되시려고 세상에 오셨고, 그것이 주님께서 이루신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씀이다.

아침기도 마무리 기도문은 전능하신 하느님 오늘도 저희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평화로 이끌어주소서. 아멘.”라고 한다.

 

지금, 마리아처럼 내 안에 말씀의 씨앗이 심어져 있음을 믿는가? 싹트고 열매 맺을 그 씨앗의 능력을 우리는 믿고 있나? 씨앗을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진정 신뢰하는가? 말씀의 씨앗이 우리 안에 심어졌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때 세상에 새로움은 없고 성탄은 그저 남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금년 성탄도 작년과 비슷하게 형식적인 연중행사가 된다. 믿음이 없다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 함께 사는 가족들, 친구들도 전처럼 여전하고, 사회나 정치적 불안도 그냥 계속된다. 그리스도께서 성모 마리아의 태중에서 태어나셨다고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나시지 못할 때 성탄은 법정공휴일에 불과한 진부한 옛날이야기가 되고 만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마리아처럼, 하느님께서 우리의 비천한 상황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믿음, 지금 내가 힘들고 괴로워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를 바라는 이들을 꼭 찾아 주신다는 믿음, 주님께서 춥고 어두운 내 삶 안에 태어나시리라는 믿음을 가진 이에게 하느님께서는 직접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고, 마리아를 복되게 한 그 믿음이 진정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Anselmo, a great teacher and Archbishop of Canterbury (1033-1109), spoke these words (blessedness; blessed) in a homily: "Without God's Son nothing could exist; without Mary's son, nothing could be redeemed."  To be chosen by God is an awesome privilege and responsibility said in his homily, “Mary received both a crown of joy and a cross of sorrow. Her joy was not diminished by her sorrow because it was fueled by her faith, hope, and trust in God and his promises.”

Jesus promised his disciples that "no one will take your joy from you" (John 16:22). The Lord gives us a supernatural joy which enables us to bear any sorrow or pain and which neither life nor death can take away. Do you know the joy of a life given over to God in faith and trust?

 

산모 엘리사벳과 태중 아기 요한의 일심동체를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님의 인사를 받았을 때 태중의 아들 요한은 성령의 은총을 충만히 받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님은 기쁨 중에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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