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대축일 강론

연중 제11주일(다해) - 다윗 임금에게 거울의 역할을 한 나탄

dudol 0 763 2013.06.15 23:05
제1독서 : 2사무 12,7ㄱㄷ-10,13
   그 무렵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우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해 주었다. 나는 너에게 네 주군의 집안을, 또 네 품에 주군의 아내들을 안겨 주고...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주님이 보기에 악한 짓을 저지렀느냐? 너는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칼로 쳐 죽이고, 그의 아내를 네 아내로 삼았다...그러므로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
   그때 다윗이 나탄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2독서 : 갈라 2,16.19-21
   형제 여러분,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통하여 의로움이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복음 : 루카 7,36-8,3
   그때에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ㅣ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발랐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에는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사랑은 공통점이 없는 것들을 한데 모아 은총의 도구가 되게 한다."(로버트 엘스버그, 성바오로딸수도회 옮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135쪽)는 글을 읽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한 죄녀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서로 다를 수 있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예수님을 집에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 시몬은 예수님께 다가온 죄녀에 대해 편견을 지니고 있었고, 그 죄녀를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에 대해서도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사리 시몬과 다른 견해를 지니고 계셨다. 모든이에게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비밀스런 면이 숨어 있는데 그 점을 예수님께서는 보셨고, 식탁에 함께 하고 있던 이들에게 죄의 용서가 한 죄녀를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셨다.

   위의 로버트의 책에는 프로이트의 사랑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프로이트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은 헛되고 부조리한 명제이며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지 못할 경우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고 주장하였다.(로버트 엘스버그, 위의 책, 119-120쪽) 한 진리를 평범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과 달리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프로이트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되었다. 군종신부 시절 개신교 신자들과 만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들은 성경의 어떤 구절들을 가톨릭 신자들과 달리, 가톨릭의 가르침을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를 보곤 하였는데, 진리에 대한 명제를 해석하는 다른 시각이 있음을 보며 속으로 놀라곤 하였었다.
   프로이트는 사랑과 행복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했다. 그는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한없이 괴로워하며, 사랑하는 대상이나 사랑을 잃게 되면 불행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고 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사랑이란 어떤 대상을 움켜쥐려는 소유 본능이고, 이러한 사랑은 부서지기 쉬운데 그것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기 때문(로버트 엘스버그, 위의 책, 122쪽 참조)이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인간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해 주셨다. 나 위주에서 벗어나 상대방 위주로 생각해 볼 때 사랑의 괴로움이 아니라 사랑의 해탈을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거울은 제사장들이 사용하던 도구이기도 했지만 자기 수양을 하고 자기 모습을 가꾸는 도구로 자리잡아 이제는 인간들이 머무는 곳이면 어디든 쉽게 접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나탄은 다윗에게 거울의 역할을 해 주었다. 그의 죄가 얼마나 크고 무거웠는지 보게 해 주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의 손길이 내리기까지 그는 자기 권력과 지위를 악용하여 우리야와 부하의 아내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죄녀는 자기 스스로 자기 인생의 거울을 들여다 보았고, 뉘우침의 체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뵈올 수 있었다. 우리는 매일 거울을 바라보며 자기 자신의 겉모습뿐 아니라 속 마음까지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2013년 6월 16일 인터넷에서 옮긴 글

다해 연중제11주일 루카복음 <7,36~50>에서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그 고을에 모두에게 알려진 한 죄녀가 회개하며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머리에 부은 여인의 이야기는 4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이야기로, 루카 복음을 제외한 마태오와 마르코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장례와 연결시켜 소개됩니다.

4복음 중 가장 먼저 쓰여진 마르코 복음은 이 이야기를 파스카와 무교절 이틀 전의 일로 소개합니다(14,3-9).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 때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14,3)고 합니다. 이 행위를 비판하는 소리를 들으신 예수님은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14,8)’라고 설명하시면서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14,9)’라고 그 여인의 행동에 예언적 의미를 부여하십니다. 마태오 복음도 무교절 첫날 최후만찬 이야기(26,17) 직전에 마르코의 내용과 같은 내용을 전해 줍니다(26,6-13). 요한 복음에서는 마르코와 마태오가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라 한 장소를 베타니아의 마르타와 마리아 집이라고 합니다(요한 12,1-8). 라자로의 소생을 축하하는 동네 잔칫상에서 라자로의 여동생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12,3)고 합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 일에 대해 불평하는 자가 바로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고 밝힙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12,7)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르코 복음에서의 내용과 비슷하게 전해줍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4복음서가 전해주면서 마르코와 마태오, 그리고 요한은 그 장소가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 혹은 베타니아의 마르타와 마리아 집이라고 밝히면서, 마르코와 마태오는 예수님의 머리에, 요한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다고 합니다. 루카도 요한처럼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답니다.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은 행위는 같지만, 어떤 이는 머리에, 어떤 이는 발에 부었답니다. 그리고 향유를 부은 시기나, 장소, 그리고 그 동기가 마태오, 마르코, 요한 복음은 모두 비슷하거나, 같고, 그 동기도 예수님의 장례일을 준비하는 것임을 예수님께서 이야기 하셨다고 전해줍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인 루카복음에서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시기나, 장소, 동기가 전혀 다르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루카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이 여인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시기가 예수님의 선교활동 중에 일어난 일로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해주기 전에 백인대장의 종을 치유해주는 이야기(7,1~10)와 과부의 외아들을 되살려주는 이야기를 먼저 소개합니다(7,11~17). 백인대장의 이야기 속에는 이방인, 이교도들 속에서도 예수님은 환영받으시는 분으로, 그리고 가난함의 극치인 과부와 그 외아들로 표상되는 소외계층 속에서도 예수님은 당신의 능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에 근거하여 분명히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정체성을 밝히면서, 정작 동족인 유다인들에게는 배척을 받으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7,18~35).

그리고는 루카는 이 여인의 신분은 동네에서 모두가 다 손가락질받는 죄녀라고 전해줍니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는 다른 복음에서처럼 예수님과 절친한 베타니아의 라자로, 마르타와 마리아 집이 아니라 예수님과 기()? 싸움 대상인 바리사이 시몬의 집이라고 말해줍니다. 백인대장 믿음에 대한 이야기, 측은지심이 넘치는 예수님, 그리고 이를 배척하는 유다인들 이야기를 소개한 후에 들려주는 오늘 루카복음이 우리에게 꼭 전해주고자 하는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지 말씀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2013. 6. 13. M. 티모테아 수녀 (스승예수제자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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