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강론

연중 제1주간 금(짝)

dudol 0 1,764 01.12 20:00

독서 : 1사무8,4-7.10-22ㄱ 여러분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복음 : 마르2,1-12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오."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독서)

  사무엘 예언자가 왕정체제의 부조리를 강력히 설파하지만 그래도 백성은  임금을 뽑자고 고집을 부린다. 종교적인 우상(어제 1독서) 외에 사람들이 의지하는 위험스러운 힘은 정치적 우상이다(F. Varillon). , 대통령, 또는 당이라고 부르는 정치적 우상들은 개인의 무력함과 한계를 보완해 줄 힘이 될 듯 보인다그러나 종종 인간은 왕이나 지도자 등의 자리에 오르면 자기가 하느님인양 독재나 독선에 빠진다.  그들은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여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국민을 노예로 만들어 마비를 초래한다인간을 마비시키는 종교적 우상이나 정치적 우상, 개인의 무력감을 넘어설 희망은 어디서 올까? 마비된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복음의 예수님에게서 그 희망과 해방을 만난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복음)

  중풍은 몸의 마비 증세로써 중풍병자는 원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의지를 박탈당한 채 자신의 본 모습을 살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면 우리도 중풍병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당시 시각에서 병은 죄의 결과로 보았기에 치유는 용서의 결과죄란 하느님께 진 빚으로 여겼기에 용서는 빚의 탕감. 예수께서 선언하신 용서는 하느님께 지은 빚의 탕감 선언, 해방의 선언이다. 치유가 마비 증세의 극복이라면, 용서는 그 원인의 제거원인의 제거인 용서가 마비 증세의 제거보다 근원적이기에 치유에 앞서 용서를 선언하신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들것'은 중풍병자가 앓던 마비 증세의 상징인데, 버리고 싶은 들것을 왜 들고 가라실까? 용서와 치유를 받았다면 장애의 상징인 들것은 더 이상 우리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들것'은 용서하신 분을 기억하게 하는 도구이기에 버리지 말고 우리가 가볍게 들고 갈 짐. 인간에게 삶을 마비시키는 장애 현상이 온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그러나 주님의 용서라면 이제 장애나 마비되었던 과거의 '들것'은 감사드릴 '기억'.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매일 접하는 신체적물리적, 윤리적, 정치적 마비 증세들과 그 앞에 무기력한 우리 모습어찌할까? 제거? 외면? 분개? 체념?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마비 증상은 형태만 달리하여 다시 나타난다마비된 내 모습을 주님 앞에 드러내고, 마비된 이웃을 주님 앞에 데려가면 용서를 선언하신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시는 말씀이 들리고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가는" 새로운 탈출(Exodus), 해방의 길이 열리리라.

 

박희중 안드레아 신부님 밴드 강론 내용

  오늘 복음은 어떤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죄의 용서를 받고, 중풍 병의 치유도 받았던 기적의 사건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카파르나움이라는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자주 들리셨던 곳입니다. 또한 이곳은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 처갓집과, 요한과 안드레의 집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사건이 있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마귀 들린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또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신 동네가 카파르나움입니다.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계신 집에 모였습니다.
마침 그때 네 사람이 어떤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려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로 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곁에 있는 많은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붕위로 올라갔습니다. 지붕을 뚫었습니다. 구멍을 내어 예수님께로 중풍병자를 내려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의 영혼과 육신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 2, 5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믿음대로 되게 하셨습니다.
  중풍병자와 네 사람에게 있었던 믿음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치유하실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중풍병자는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누워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풍병자와 그를 돕는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중풍 병도 고치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찾으신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보신 두 번째 믿음은 포기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처음 중풍병자와 돕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수님께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집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중풍병자와 네 동료는 예수님께 갈 수 있는 길이 막혔습니다. 이때 이들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침상을 들고 올라갔습니다.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병자를 내려 보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신 중풍병자와 네 사람에게서 보신 또 다른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시면 하실 수 있다고 믿었기에 중풍병자를 들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치유 받을 수 있다고 믿기에 지붕에 올라가 구멍을 내어 결국 예수님과 중풍병자가 만나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시다가 갑자기 머리위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병자가 내려오는 것을 보십니다. 그들의 행동 속에서 믿음을 보셨습니다.
  믿음은 행동을 이끌어 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는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하였습니다. 믿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믿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믿기 때문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갑니다.
  교우 여러분! 나는 지금 사람들을 예수님께 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 길을 가로막는 사람입니까?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인도해 치유를 받도록 인도한 네 친구와 같은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를 용서하셨고, 병을 치유해주셨습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동료가 있었던 것은 큰 행복이었습니다.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우정을 쌓을 수 있음은 비범한 노력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네 친구를 저는 네 복음서로 묵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물 중풍병자, 나무 위에 올랐다가 예수님을 집에 모실 수 있게 된 자캐오에 대해서도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외국 성지순례 때 성당 천정을 보면 수많은 성화들이 있습니다. 로마의 성 이냐시오 기념 성당 안에는 여러 가지 묵상할 수 있는 성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인천교구 선학동 성당 천정에도 예수님의 성심상과 12사도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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