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강론

연중 제1주간 목(짝)

dudol 0 2,189 01.11 13:48

독서: 1사무 4,1ㄴ-11 이스라엘은 크게 패배하고 하느님의 궤도 빼앗겼다.

복음: 마르 1,40-45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에 단 한 번 나오는 나병 치유 이적사화입니다. 그런데 오늘 치유에는 상황묘사, 기적의 치유, 치유 실증, 치유된 사람의 반응 순으로 엮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 장소, 환자의 이름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목격자들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사화는 예수님의 일정한 자유행적을 전하기보다 해외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위대한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아 꾸민 이야기일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문둥병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피부병을 나병이라 합니다. 나병은 불결할 뿐 아니라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나병환자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피하게 했습니다.

나환자가 다시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려면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관에게 치유 사실을 인정받은 다음 제사를 바쳐야 했습니다(레위 14,2-32).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께서 나병을 고쳐주신 사실을 유다인들에게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는데 이제 그 청중 가운데서 처음으로 나환자가 선포활동에 가담합니다. 아울러 마르코는, 조용히 숨어 계시고자 하나 결국은 널리 알려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돋보이게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나병과 같은 피부 질환은 사람들의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부정(不淨)하고 전염되는 것으로 여겨져, 나병 환자들은 자기네 집과 마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건강한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지낼 수도 없고 자기 아이들을 안아 줄 수도 없었습니다. 홀로 고립되었던 것입니다.

 

악성 피부병에 걸린 병자는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푼다. 그리고 콧수염을 가리고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친다. 병이 남아 있는 한 그는 부정하다. 그는 부정한 사람이므로, 진영 밖에 자리를 잡고 혼자 살아야 한다.”(레위13,45-46)

 

  오늘날 병으로 인한 이와 같은 신체적 고립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고립이 다가와 있습니다. 아무도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지닌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죄 때문에,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에는 부당하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고립감이 어떠한 것이든, 예수님은 바로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 나병환자는 예수님에게 다가가려고 용기를 냈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내미시어 그 사람을 어루만지시고, 그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치유해 주셨습니다. 자기 가정으로 되돌아가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기꺼이 우리를 어루만지시고 두려움을 가라앉히시며 죄의식에 짓눌린 양심을 치유해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기꺼이 그분의 품에 따뜻하게 안아 주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비로우신 구원자를 모시고 있습니까!

소록도의 두 천사 수녀 이야기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oeger·83)와 마가렛 피사렉(Margareth Pissarek·82) 두 수녀는 인스브루크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1962년과 1966년 한국 땅을 밟아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단 한 푼의 보상도 없이 빈손으로 살다가 20051121일 편지 한 장만을 남긴 채 소록도를 떠났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1954, 1962년 각각 종신 서원을 했지만 엄밀한 의미로는 수녀가 아닌 평신도 재속회원이다. 실제 두 수녀는 수녀보다는 할매라는 친근한 호칭을 좋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6516일 고흥 문화회관에서 열린 마리안느 수녀 명예 군민증 수여식이 있었다.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래 "계약 궤"는 하느님 현존의 징표로 언제나 이스라엘을 지키고 구원해 주시는 상징.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번에도 계약 궤를 이용하여 전쟁에서 승리할 줄 알았는데.

 

"이스라엘은 패배하여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 (독서)

참담한 패배, 산산조각 나는 이스라엘의 희망.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하느님을 승리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마음가짐, 하느님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신앙이 문제. 하느님은 우리의 이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찬미를 드리며 우리가 봉사할 분.

 

"사람들이 의지하는 부조리한 힘 가운데 가장 위험스러운 것은 종교적  힘이다종교의 힘, 혹은 하느님의 힘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려는 의도는 이미 우상숭배처럼 일탈된 신앙. 신앙 없는 종교는 위험스럽고 끝내 파멸로 이끄는 마법일 뿐이다마음의 회심이 아닌 종교의 거짓 신성함은 미안하지만 희망을 실현할 수 없다." (F. Varillon). 

계약 궤보다 중요한, 진정으로 신성한 것은 양심과 자유의 원천인 회심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복음)

나병에서 풀려났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그런데 왜 소문 내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리실까? 사람들이 나병 치유만 보고, 예수님을 이용하여 이득을 보려는 마음이 들어 신앙을 우상숭배로 변질시키고, 정작 중요한 예수님과의 만남을 놓칠까 염려하시는 말씀. 더욱이 그분이 누구신지는 아직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나 예수님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니 조용히 지켜보며 말없이 따르라고 이르신다.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기적을 널리 선전하는 사람들의 종교적 우상화 시도를 피해 외딴곳으로 물러가시는 예수님. 하느님의 힘을 이용하여 이득을 보고, 신앙을 진통제로 사용하며신기한 현상을 찾아 우상화하려는 시도에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외딴 곳으로 물러가신다. 하느님이 주시는 어떤 이익이 아닌 하느님과의 만남, 예수님의 치유가 아닌 치유하시는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그리며 외딴곳을 찾으라는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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