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강론

연중 제1주간 수요일(짝)

dudol 0 22 01.10 21:39

독서: 1사무 3,1-10.19-20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복음: 마르 1,29-39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베드로 사도의 장모님은 병에서 치유된 이후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갑작스럽게 대문 앞에 밀려온 사태를 맞이하였습니다. 병에서 치유되어 예수님과 사도들에 대해 마음을 열었는데 많은 환자들의 집앞 쇄도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기도 해야 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열병을 앓고 있던 시몬의 장모를 비롯하여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다. 의학적으로 열이 난다는 것은 감염의 표지로 사람을 쇠약하게 하고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고 한다.

예수님은 열병을 앓는 인간의 "손을 잡아 일으키신다."  신적 권능을 지닌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고통에 손을 내미신다참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시는 참 사람 예수님의 모습이다

여기서 사용한 "일으키심(egeiro)"이란 동사는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할 때도 사용되는 동사로 죽은 소녀의 소생, 오그라든 손의 치유, 중풍병자, 소경 치유, 수난을 앞둔 결의 등에도 쓰였다. 새로운 창조에 의한 인간 완성은 소박하기 그지없는 동작 - 손을 내밀어 일으키심으로 비롯된다

그러자 "열이 가신다." 열이 내린 것은 내면의 갈등을 일으키던 여러 요소들이 서로 화해한 모습. 인간을 일으키시는 손길은 우리 내면이 싸움을 멈추고 아름답게 어울려 서로 "시중을 들게" 하신다.

주님의 치유는 신비스러운 능력의 과시가 아닌 "손을 잡아 일으키시는" 사랑에 가득 찬 생명의 나눔.

열이 많이 나는 세상에서 뒤숭숭한 마음, 방황과 혼동, 다투는 기분, 갈 길이 안 보이는 때는 내게 손을 내밀어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받아들일 때진리와 마주하도록 말씀을 들을 때이자, 손이 아닌 살과 피를 내어 주시는 주님을 모실 때. 내면의 소리들이 서로 싸우지 말고 아름답게 어울려서 시중을 들며 당신을 찬미할 때.

한 세대가 가고 새 세대가 오고

 

201716일 사제 서품식에 다녀와 드리는 기도:
  "주님, 오늘 사제서품식이 남동체육관에서 있었습니다. 당신의 멋진 아들들이 새 사제(18)와 부제(12)로 태어났습니다. 새 성직자들이 탄생할 때마다 새로운 활력이 교회에 흘러넘침을 느낍니다. 그리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짐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이들 새 성직자들에게 당신의 크신 은총을 가득 내려주십시오. 그런데 금년에는 신학교에서 떠나와 본당 주임신부로 산 체험 때문인지 내적 충만함의 기쁨보다는 염려하는 마음이 가슴 깊이 똬리를 틀고 있음을 느꼈었습니다. 소명 식별 책임자로 수품자들을 4년 동안 개별 면담을 하며 도왔던 추억 때문이겠지요? 주님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불러 쓰시고자 오늘 당신 제단으로 부르시고 계신데, 저는 교우들의 기대를 마음에 가득 담아 그들 위에 얹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그릇에 신자들이 바라는 온갖 좋은 목자의 상을 가득 담아주려는 욕심도 제 안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네들의 멋진 은총의 면을 보려 하기 보다는 부족하던 모습이 언뜻언뜻 떠올라 주님의 기쁨 앞에 부끄러운 마음을 지니고 말았습니다. 제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어 저도 주님처럼 있는 그대로의 새 사제들과 부제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오늘 독서에는 98(1사무 4,15)의 사제 엘리와 소년 사무엘의 이야기가 봉독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자기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엘리 할아버지의 부름으로 잘못 인식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만큼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그 소년을 택하셨습니다. 엘리는 오랜 세월 하느님 앞에 바르고 올곧은 길로만 걸어오지 못했습니다. 두 아들(호프니와 피느하스) 교육에서 그는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느님의 심부름꾼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사무엘을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사무엘에게 정확히 알려주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방법을 일러주어야 했습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13년간 소임을 하였을 때에는 매년 부제들이 사제로 배출되어 나가고, 신입생들이 새로 입학을 하고 그런 순환을 몸으로 느끼며 엘리와 사무엘의 멤버 교체를 유사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동안 7년 내지 9년 신학과 철학 수련은 마친 젊은이들이 사제와 부제로 불림 받는데 일조한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 젊은이들을 통해 일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손길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눈이 어두워진 엘리 사제처럼 영안으로 젊은이들의 미래를 예견해야 했습니다. 더 멋진 여생을, 주님 보시기에 의합한 사제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하곤 했습니다.

  사제서품이 있는 날 미사 후반에 새 사제들의 인사명령이 발표됩니다. 서품 미사가 있기 전에는 사제들이 은퇴하거나 새 소임지로 전임되어 가는 공문을 받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정든 이들과의 이별이나 자리 양보에서 오는 심리적 아픔이나 새 환경 적응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젠가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 평소에 자기 자리를 양보하고 떠나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등장하시자 더러운 악령들이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나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하루를 오늘 마르코 복음을 통해 묵상해 봅니다. 무척 바쁘신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가운데서도 기도하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장모를 고쳐주시고, 악령 들린 이들을 고쳐주셨으며, 새벽에 일어나시어 기도하시고, 다음 동네를 향해 복음 선포의 여정을 계속해 나가셨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자기 복음서 전승들을 정리하면서 치유전승 중 제일 첫자리를 차지하는 이야기를 베드로 사도의 장모님 치유 이야기로 배치하였습니다. 이 점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일꾼으로 뽑아 쓰시는 베드로 사도의 가족에 대한 배려 - 열병에서 치유 - 를 첫 번째로 하셨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꾼 역할을 하려면 가정의 대소사에서 탈피할 수 있어야 하기에 그리 하신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재미있게 말하기를 좋아하는 한 사제는 "사위가 딸 버리고 주님 쫓아다니는 것을 보고 열 받지 않을 여인(장모)이 어디 있겠느냐!" 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도 합니다. ㅎㅎㅎ. 베드로 사도의 장모는 예수님 공생활의 첫 치유 은사를 받은 이가 된 것도 베드로 사도가 첫 제자로 불림을 받은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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