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나눔터

조선의 시인 이옥봉

카타리나 1 4,647 2004.10.19 09:09
꿈속의 넋(夢魂)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떠하시나요? 달 비친 사창(紗窓)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꿈 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걸. g806.jpg [조선의 시인 이옥봉] 조선 인조 때의 일이다. 승지 조희일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 원로대신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조원을 아느냐”는 물음에 조희일이 부친이라 대답하니, 원로대신은 서가에서 [이옥봉 시집]이라 쓰인 책 한 권을 꺼내보였다. 조희일은 깜짝 놀랐다. 이옥봉은 아버지 조원의 소실로서 그 생사의 종적이 묘연한 채로 40 여년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옥봉의 시집이 어떻게해서 머나먼 명나라 땅에 있게 되었는지 조희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원로대신이 들려준 얘기는 이러했다. 40 년 전쯤 중국 동해안에 괴이한 주검이 떠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너무나 흉측한 몰골이라 아무도 건지려 하지 않아 파도에 밀려 이 포구 저 포구로 떠돈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시켜 건져보니 온몸을 종이로 수백 겹이 감겨 노끈으로 묶은 여자 시체였다. 노끈을 풀고 겹겹이 두른 종이를 벗겨 냈더니 종이의 바깥 쪽은 백지였으나 안쪽의 종이에는 빽빽히 시가 적혀 있고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 씌어 있었다. 읽어본즉 하나같이 빼어난 작품들이라 자신이 거둬 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온 몸을 시로 감고 죽은 여인 이옥봉, 이옥봉은 조선 명종 때 충청도에서 왕족의 후예 이봉지의 서녀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시문에 뛰어난 재주를 보인 옥봉은 신분의 굴레로 첩살이밖에 못함을 알게 되자 결혼에 대한 꿈을 버리고 서울로 갔다. 옥봉은 장안의 내로라하는 명사들과 어울리며 단종 복위운동에 뛰어 들었고, 이어서 시깨나 짓는 선비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옥봉, 그녀는 조원이란 선비를 사랑하여 첩이 되겠다고 자청했다. 첩살이가 싫어 결혼을 거부했던 그녀였지만 사랑 앞에서는 약해진 모양이다. 그런데 조 원은 옥봉을 받아들이는 대신 앞으로는 절대 시를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라 했다. 여염집의 여인이 시를 짓는다는 사실은 지아비의 얼굴을 깎아내리는 남성중심의 편견 때문에, 그리고 옥봉은 맹세를 한다. 옥봉 자신의 시는 외로움과 허망함의 발로였으니 지아비를 얻으면 시는 쓰지 않아도 좋을 것이라고.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조원 집안의 산지기 아내가 찾아와 하소연을 하는데 남편이 소도둑 누명을 쓰고 잡혀갔으니 조원과 친분이 두터운 파주목사에게 손을 좀 써달라고 했다. 사정을 들어본즉 아전들의 토색질이 분명했다. 옥봉은 파주목사에게 시 한 수를 써보냈고 산지기는 무사히 풀려났다. 그러나 이 일로 옥봉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조원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여자와는 살 수 없다”며 내친 것이다. 뚝섬 근처에 방 한 칸을 얻어 지내며 옥봉은 조원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으나 허사였다. 조원과의 약속을 지키느라 10 년 가까이 시혼을 억눌러오다가 사회적 약자인 산지기를 위해 시 한수 지어준 일로 쫓겨나다니... 옥봉으로서는 야속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으리라. 옥봉은 애통한 마음을 담아 시를 읊고 또 읊었다. 더 이상 시짓는 일을 참을 까닭이 없었으니까..... 평생 이별의 한이 병이 되어 ;平生離恨成身病 술로도 못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네 ;酒不能療藥不治 이불 속 눈물이야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과 같아 ;衾裏泣如氷下水 밤낮을 흘려도 그 뉘가 알아주나 ;日夜長流人不知 조원을 단념한 옥봉은 평소 가보고 싶었던 중국으로 가 마음껏 시심을 펴보려 했나 보다. 그리고 자신의 시로 몸을 감고 낯선 바다에 뛰어들었나 보다. 여성을 가정 내 존재로 규정하고 그 틀을 벗어나는 여성은 천시하거나 사회적 보호밖에 두었던 조선시대의 여성관에 죽음으로 항의한 셈 이다. 사랑을 위해 시를 포기했지만 자신의 삶은 결국 시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침묵으로 웅변하면서. (출처 : 한겨레 21. 1997. 7. 17 / 박은봉/ 역사연구가 ) 정수년의 해금연주  ;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 Beethoven, Sonata - pathetique 수정) 그림 ; 김원숙     Shadow Comfort/1982/50 x 45/ink/paper < 화가의 홈페이지> 그 시대의 제도나 틀에 이렇게 항변한  여인이 있었네요. 오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글이라  제 일기장 카페에  그림과 음악을 곁들여 담아두었던 것입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을 해금으로 연주하다니.. 너무나 독특하고 아름답습니다.  베토벤께서 들으신다면 감탄하실거예요.    ^^ 좋은 하루되세요!    

Comments

두돌 2004.10.19 14:08
카타리나 님, 시 한 수 올리시어 가을이 깊어가는 느낌을 더 깊이 느끼게 해 주셨군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해금연주 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된 것이지요. 혹 가능하다면 음악 다시 올려 주실 수 있으신지요? 음악 소리가 흐르면 시를 감상하는 느낌도 좀 달라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시를 대하며 시(詩)작의 꿈을 접게 한 한 조선 남정네의 자애적 태도가 마음에 큰 아쉬움으로 남아 바람에 지는 낙엽 소리를 듣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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